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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일본
등록날짜 [ 2009년02월10일 00시44분 ]
<New Zealand 오클랜드에서의 리셉션 공식 초청 책자>

 

 함대는 서부연안의 도시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세계일주의 위대한 모험을 축하하며 계속적으로 축제(모든 사람, 해군, 민간인 모두 마찬가지로 좋아하는)를 주최하였다. 7월 7일, 태평양을 횡단하기위해 닻를 올리고 샌프란시스코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함대는 Sperry 소장의 지휘아래 다시 모였다.

 7월 16일, 함대는 하와이에 도착하였다. 레가타와 루아우스와 함께 축제를 여는 진주만에서 6일을 쉬고 함대는 뉴질랜드로 항해를 했고, 8월 8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앵커를 내렸다.

 뉴질랜드는 함대에게 성대한 리셉션을 열어줬고 Sperry와 그의 참모들에게 전통 부족인 마오리족들이 거주하는 마을을 구경시켜주었다. 승조원들을 위한 마오리족의 마지막 축제 즈음에 Haka라는 마오리 전사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그 전사는 장군과 그의 보좌관들의 앞에 멈춰 서서, 이가 드러날 정도의 큰 웃음을 짓고 'bully'라고 고함치며 즐거운 공연을 보여주었다. Sperry와 참모들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루즈벨트 대통령까지 커다란 놀라움과 즐거움에 대해 감동하였다.

8월 15일, 함대는 5일후에 도착하는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함대는 함정이 들어오는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밤을 지새운 50만 명의 사람들에게 환대 받았다. 그 후 앞으로의 8일 동안 그 해군 방문자들에 대한 존경 속에 열린 끊임없는 축하행사가 있었다.

 이러한 모든 축하에 승조원 중 몇몇 이는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한 승조원은 시드니 공원의 한 의자에서 잠든 채로 발견되었다. 방해받지 않길 바라면서 그는 위에 ‘예, 저는 호주인 들과 함께 해서 매우 기쁩니다.’ ‘예, 저는 당신의 공원이 세계에서 가장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매우 피곤하고 잠들고 싶습니다.’ 는 표시를 해 놓기도 하였다. 매우 친절했던 시드니 사람들은 그들을 고이 자도록 해 주었다.

<“가장 즐거웠던 스포츠는 카누를 타고 서핑을 하는 것이었다. 경기는 1개 카누에 5~6명이 타고 1마일 정도 가는 것이었다. 파도를 기다렸다가 적당한 파도가 오면 힘차게 노를 저어가는 것이다. 큰 파도에 시간을 적절히 맞춘다면 해안으로 빠르게 갈 수 있다. 때로는 한 번에 1/2 마일씩이나 갈 수도 있다.” 미 해병대 Edward S. Willing 대위. 1908년 7월 20일>

<미 해군 소총 선수들. 오클랜드에서 오클랜드 컵에서 우승하였다. 모든 이들이 미 해군사관학교 졸업생이다> - 해군역사관, 사진전 -

<마오리 원주민들이 Sperry 소장을 위한 춤을 추고 있다. 뉴질랜드 Rotorua. 1908년 8월>

<대서양 함대가 호주 시드니 항에 입항하는 전경> - 해군역사관, 사진전 -

<백색함대가 호주를 방문하는 동안 해병대의 거리 행진모습. 1908년 9월 3일>

<오른쪽 위 : 백색함대 수병들이 시드니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시드니 항에 들어선 백색함대. 그림은 전함 위스콘신의 현측 6인치 포 모습>

<비단에 인쇄된 백색 함대 방문 기념품> - 해군역사관, 사진전 -

<New South Wales 정부로부터 Wisconsin 함 장교들의 연회 참석을 권유하는 초대장. 1908년 8월 21일> - 해군역사관, 사진전 -

 

 멜버른도 함대를 위한 성대한 행사를 열어주었다. 도시의 중요한 것들을 모두 경험한 승조원들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멜버른이 보여준 친절로 인해 승조원들이 그곳을 떠나기 싫었다. 탄광부들이 늦게 도착함으로 인해 알바니에서 필리핀으로의 출항은 지연되었다.

<“우리들의 함상 동물원은 매일 커졌고,

<세계일주 기간 동안, 많은 회사들이 백색함대의 이름을 딴 상품을 만들었다>

<1908년 8~9월 멜버른 방문 기념 엽서> - 해군역사관, Roy W. Davis Collection -

<Uncle Sam과 John Bull, 미국 독수리와 영국 사자, 그리고 호주 캥거루를 같이 놓고 “우리는 하나다”라는 모토를 내세운 것은 미국과 호주 간의 국가 이익의 일치를 뜻한다>

 

 함대는 10월 2일에 마닐라에 머무른 후 10월 10일 일본을 향하였다. 남중국해를 지나는 동안 함대는 강력한 태풍을 만났다. 한 승조원의 말을 인용하면, “태풍은 포모사 앞에서 나타났다. 당신이 볼 수 있듯이, 함정이 궂은 날씨에 있으면 마스트가 파도 아래에까지 내려간다. 당시 모든 전함에서 이러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궂은 날씨를 겪은 후에는 잠시 동안 아무것도 볼 수 없다.”

태풍을 지나는 동안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한 승조원이 말하길, “당신이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승조원 중 한 명이 파도에 휩쓸려 나왔다. 파도는 그 승조원을 다른 함정으로 날랐고 다음 갑판으로 내동댕이쳤다.”

<“우리는 2~3일 간 지속되었던 태풍에 휩싸여 많아야 4노트밖에 전진하지 못하였다. 만약 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면 우리 모두는 체력이 소모되었을 것이다. 파도가 너무 심해서 우리는 자지도, 앉지도, 일어서지도 못하였다.” 코네티컷의 전기기사 Leslie Haines가 그의 부모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1908년 10월 19일. 전함 New Jersey가 남중국해에서 태풍을 만났을 때 찍은 사진> - 해군역사관, 사진전 -

<일본을 향하던 중 태풍 속의 전함 Kansas의 모습. 1908년 10월>

<일본을 향하던 중 함대는 태풍을 만났고 피해는 없었다. 불운하게도 두 명의 승조원이 파도에 휩쓸렸고,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익사하였다> - 해군역사관, Roy W. Davis Collection -

<일본에서의 첫 번째 상륙. 요코하마. 1908년 10월>

<“해안 길로부터 건설된 긴 부두가 있다. 그것은 기둥과 판자들로 만들어졌으나 상록수로 뒤덮여져 있어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가지고 있다.” 미 해병대 Edward S. Willing 대위가 그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1908년 10월 22일. 사진은 Sperry 소장과 다른 승조원들이 요코하마 부두에서> - 해군역사관, 사진전 -

<미국 함대의 수병들이 요코하마 파티로 향하는 길>

Michael J, Crawford 著
Donald C. Winter 序文
문무대왕함장 대령 박동우 譯

KDN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kdn040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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