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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려 우왕과 최영의 요동정벌론에서 이성계의 가을출병론은 2014-09-02 10: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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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2181     추천:90
고려 우왕과 최영의 요동정벌론에서 이성계는 사대불가론을 주장하면서 요동정벌을 반대했다가 한 발짝 물러나서 추수가 끝나서 군량을 확보한 가을에 출병을 해서 요동을 정벌해야 한다는 가을출병론은 타당성이 있는 주장인가요? 비가 많이 내리는 덥고 습한 장마철에 요동정벌을 위한 군사를 일으키는 것과 농사가 끝나는 가을에 요동정벌군을 일으키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고려의 요동정벌을 성공하는 조건으로 보면 더 낫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가 있는지 궁금 합니다. 보급의 문제를 보면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에 고려군이 요동정벌을 위한 전쟁을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군량과 무기, 군수품을 보급받고 병력도 보충을 받는 것이 가을철과 비교할 때에 어떨까요? 이성계의 가을출병론을 군사 전략적인 관점에서 보면 얼마나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가 있는지, 고려가 단기전으로 요동정벌을 끝내는 경우와 중장기전으로 요동정벌전을 수행하는 경우를 비교한다면 장마철에 출병하는 것과 가을에 출병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 선택 이라고 할 수가 있나요? 역사에는 만약 이란 단어는 없지만 우왕과 최영이 이성계의 가을출병론을 받아들였다면 최영이 팔도 도통사로, 좌우 도통사인 이성계, 조민수 등과 함께 요동정벌에 나선다고 보면 위화도 회군이 일어나지 않았고 고려가 옛 고구려의 고토수복을 위한 요동정벌을 실행해서 성공을 했다고 할 수가 있을까요? 우왕과 최영이 명의 철령위 설치에 반발해서 요동정벌을 추진한 것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지 때문인지 아니면 실제로 요동정벌을 할 의지가 강해서 라고 봐야하는지 어떤 것이 더 맞다고 봐할지 궁금 합니다.
ID : 이경학
2014-09-03
15:38:26
1차 요동정벌 당시에는 성공가능성이 높았다고 봅니다, 1차때는 3군데(단둥지역, 국내성, 요양<요동성>)를 점령함으로써 사실상 남만주를 일시적이나마 장악했었으니까요.
하지만 2차때는 성공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명이 점차 안정되어가고 있었고 고려는 내우외환으로 힘든시기에서 단기전으로 승부를 가르려는게 맞다고 봅니다.그리고 개인적으로는 1차는 고토수복 의지, 2차는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ID : 고구려(고대경)
2014-09-04
10:17:54
최영이 팔도도통사로 좌우도통사 이성계, 조민수와 함께 요동정벌군을 이끌었다면 위화도에서 회군을 했을지 아니면 진짜 요동을 공격해서 정벌을 했을지 궁금 하네요.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을 시도 했던 것은 우왕은 자신의 정통성 문제와 최영은 친원파로써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 때문에 요동을 정벌할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을 할려고 했다면 우선 내치에 힘을 쓰면서 고려 내부의 문제를 개혁을 통해서 해결하고 요동정벌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벌을 한다면 군량과 군수품에 대한 보급과 소실이 되는 전투병력을 어떻게 보충을 해야할지, 고려의 백성들을 이주정착을 시키고 여진족을 포섭, 회유를 해서 고려에 복속을 시키고 요동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고려인들의 협력을 얻어내고 명과 북원으로 부터 요동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짜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ID : 이경학
2014-09-04
11:11:41
내치에 힘쓰는만큼 명나라가 요동을 방어할 시간을 주게되죠 그만큼 희생을 각오했어야 할겁니다
ID : 고구려(고대경)
2014-09-04
12:09:08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정복전쟁도 고국원왕 이후에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이 내치에 힘을 쓰면서 국력을 키우고 내부 체제를 정비하면서 왕권과 중앙집권체제를 정비를 한 것이 한 요인이죠. 조선을 개국하는 데에 공헌을 한 정도전은 진짜로 요동정벌을 할 의지가 있었을까요? 사병을 혁파해서 관군으로 편입시키고 진법훈련을 통해서 군사력 강화를 할려고 했던것을 보면 정도전은 최영과 비교해서 요동정벌에 대한 의지와 진정성은 얼마나 있었을지 의문이 드네요.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생각했다면 한양이 아닌 평양으로 수도를 정하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요? 평양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수도 였다는 점을 보면 조선이 옛조선의 계승자 라는 명분을 얻기 쉬웠다면 요동정벌을 위한 명분도 쉽게 얻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ID : 최영철
2014-09-28
07:05:37
국론분열을 전쟁으로 이기려한 모험수가 아닐런지요.
다만 간과하고 있던 것은 이성계의 반란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라 볼수 있죠.

이성계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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