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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제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을 상대로 웅진성에서 장기전으로 저항을 했다면 2014-03-15 21: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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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4112     추천:100
백제 의자왕이 웅진성주 예식진의 배신으로 포로로 잡혀서 당으로 끌려가지 않았고 나당연합군을 상대로 웅진성에서 장기전으로 저항을 했다면 백제가 쉽게 멸망을 당했다고 할 수가 있을지 궁금 합니다.

 

 소정방이 지휘하는 13만의 당 수군이 기벌포로 상륙하고 김유신이 지휘하는 5만의 신라군이 탄현을 넘어서 계백이 이끄는 5천 결사대를 전멸시킨 상황에서 의자왕이 웅진성에서 나당연합군을 상대로 하는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가고 백제인들이 의자왕을 중심으로 단결해서 나당연합군에게 저항을 하고 고구려와 왜국에 구원병을 요청하는 청병외교를 했다면 백제가 나당연합군을 몰아내는 멸망당하지 않았다고 볼 수가 있을까요?

 

 벡제의 멸망원인을 보면 신라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국력소모를 많이 했고 기벌포와 탄현을 지키라는 성충의 말을 의자왕이 듣지 않았고 의자왕과 8대성 귀족간의 갈등과 내분이 이라고 할 때에 역사에는 만약 이라란 없지만, 예식진이 배신을 하지 않았고 웅진성을 근거지로 의자왕이 오랜시간 저항을 했고 백제인들이 의자왕을 중심으로 단결을 해서 나당연합군을 상대로 저항을 했다고 할 때에 확실히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쉽게 멸망시킬 수가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ID : 박진
2014-03-15
22:51:06
지방군이 모이는 시간을 벌었으면 모르는 게임이었죠.. 후일 부흥군에 당나라군이 부여근방만 지키고 고전 하였으니...
ID : 고구려(고대경)
2014-03-16
00:21:50
의자왕이 사비성에서 웅진성으로 피신을 한 것은 지세가 험준한 웅진성을 기반으로
나당연합군에게 저항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웅진성주 예식진의 배신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의자왕 이라는 구심점이 있었다면 백제의 성주들과
지방군들은 나당연합군에게 저항을 했을 가능성이 높고 전쟁이 장기화가 되면 군량과 보급품을
신라에 의존해야 하는 당군이 불리해지지 않을까요? 본국에서 보급을 받는 것은 시일이 오래
걸린다고 보면요. 백제의 입장에서는 전쟁이 장기화가 되면서 지구전과 유격전을 병행해야 유리하고
나당연합군의 입장에서는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여집니다.
ID : 윤영철
2014-03-16
00:32:55
성충이 말이 완전한 정답은 아닙니다..기벌포와 탄현을 지키자는것도 하나의 선택지였고 당시 백제의 전략은 충분히 당군과 신라군을 동시에 싸워도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기습으로 처음엔 당황했지만 지세가 험하고 수성에 유리한 웅진성으로 전쟁지휘부를 이동하고 당군과 신라군은 이동사실도 모르고 사비성으로만 진격중이었죠..
사비성으로 가는길목의 성과 요충지는 전부 무시하고요..말그대로 전격전으로 사비성을 함락시키고 백제의 대왕을 사로잡고 전쟁을 조기에 종료시킬생각이었지만 백제는 그걸 간파하고 지구전과 장기전으로 전쟁을 끌고 갈 생각이었습니다..웅진성으로 천도하고 전국의 군대를 불러모으고 사비성으로 간 당군과 신라군을 사비성주위에서 포위해서 식량을 끊고 포위섬멸할 생각이었네요..
ID : 고구려(고대경)
2014-03-16
00:38:59
벡제가 웅징성주 예식진의 배신으로 의자왕이 포로로 잡히지 않았다면
고구려도 연개소문 사후에 내분으로 쉽게 멸망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가 있을까요?
역사에는 만약 이란 없지만요.
ID : 윤영철
2014-03-16
00:45:38
역사스페셜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방송한적이있는데 거기서 나오더군요..기벌포와 탄현을 지켜서 적을 막는다는 수동적 방어전략의 한계가 분명하기에 이유는 백제의 대군이 아직 모이지 않았기에 지킬수없다는 거죠..
다른 방법인 적극적 공세방어전략으로 바꾼겁니다..사비성으로만 직공하는 나당연합군 이들은 사비성으로 진군하면서 주변의 성과 요충지는 전혀 거들떠도 보지않고 빠르게 수도로 달립니다..즉 이미 보급이 끊겼다는 말입니다..
이걸 감수하고 이들은 사비성만 함락시키면 거기에 백제의 대왕이 있으니 전쟁에서 이긴다는 전략이었지만 백제는 지휘부는 이미 그들 모르게 웅진성으로 이동합니다..나당연합군이 사비성을 공격할땐 이미 웅진성으로 전부 이동하고 결전을 준비하고 있던중 웅진성주 예식진이 반역을 합니다..설마 웅진성주가 반역할줄은 모른거죠..그 누구도..
그리고 얼마나 분했던지 의자왕은 웅진성 감옥에서 자결까지 시도할 정도였죠..
당시 백제는 신라를 완전히 앞도하는 국력을 가지고 있었고 전국 5방의 병력만 집결시키면 해볼만한 싸움이라고 생각했구요..근데 지휘부가 배신자로 인해서 한꺼번에 붙잡히면서 백제의 모든전략과 구심점이 상실됩니다..
실제로 흑치상지가 고작 나당연합군이 침입한지 단 몇일만에 3만의 백제군을 모았다고 기록되있네요..전국에서 이와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대군을 모을수있었는데 의자왕이 붙잡히고 같이 웅진성으로 피했던 왕족들 신하들이 거의 모두 붙잡히면서 백제가 어이없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망한겁니다..
계백의 황산벌전투도 시간벌기 지연전이었구요..웅진성을 기점으로 백제의 전국에서 대군이 모을시간을 벌기위해서 저들이 사비성으로 가는걸 지연시키기 위한 전투입니다..사비성의 길목이었죠..황산벌이 거길 지키므로써 적들은 더욱 사비성으로 가기위해 최선을 다할테고 사비성은 이미 버리는 패로 준거죠..적들을 사비성으로 모아서 백제 전역인 5방에서 모인 대군으로 식량을 끊고 포위섬멸하기위한..
ID : 윤영철
2014-03-16
00:52:46
백제가 망하지 않았다면 고구려도 망하지 않았을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그 이유는 백제가 망하기 전에는 고수전쟁이든 고당전쟁이든 해을 넘기는 전쟁이 없습니다..즉 겨울이 오기전에 전쟁이 끝난다는 말이죠..만주의 추위와 북한지역의 추위는 장난이아닙니다..10월이나11월이면 눈이 내리고 영하로 떨어집니다..그러면 적과 싸우는 전쟁을 걱정할게 아니라 동장군을 걱정해야 될판입니다..눈이 오기전에 철수하지 못하면 적과 싸우기도 전에 얼어죽는거죠..고구려와 싸운 역대 중국의 수나라,당나라는 이걸 걱정해서 항상 단기결전 단 몇개월의 전쟁기간밖엔 사용할수없는 겁니다..그만큼 시간이 적들은 시간에 쫓기죠..시간이 갈수록 방어하는 입장인 고구려군은 유리해지고요..
ID : 고구려(고대경)
2014-03-16
00:55:40
백제가 스스로의 힘으로 나당연합군의 침략을 막아내었다면 백제는 성왕 때에
잃어버린 한강유역을 수복하고 멸망당하는 것은 백제가 아니라 신라가 되었을
수도 있고 여제동맹은 공고 해졌다고 봅니다.
당도 고구려를 쉽게 멸망시킬 수도 없어고요.
ID : 윤영철
2014-03-16
01:02:37
거기다 장거리 원정이라 고구려군에 의해서 요서로 이어지는 육로 식량이 번번히 끊기고 수군이 번번히 패하여 바닷길로의 보급도 끊깁니다..그럼 빨리 퇴각하지 않으면 적들은 그대로 굶어죽는거죠..
헌데 백제가 멸망하면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적들은 해를 넘기는 전쟁이 가능해졌죠..그 이유는 고구려 남쪽의 백제를 차지하면서 그곳에서 식량을 공급받고 병력을 주둔시키면 쉴수있게 된거죠..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당군은 보급을 받고 위험하면 백제지역으로 퇴각하고 겨울에도 전쟁이 가능해졌고 장기전으로 고구려를 괴롭힐수있게 된거죠..
실제로 백제가 멸망된 직후 660년 12월부터 당군의 고구려 공격이 시작되는데..본격적인 전쟁은 661년 부터 시작되지만 전쟁이 끝난건 662년 봄이죠..적들은 더이상 겨울을 걱정하지 않고 장기전을 수행할수있게 된겁니다..
거기다..당시 전쟁에서도 고구려가 연개소문을 중심으로 뭉쳐서 결국엔 사수전투등에서 승리하여 당군을 물리치는데 그때도 일부당군은 백제지역으로 퇴각하여 전멸당하는것을 면합니다..그걸위해서 신라군은 김유신이 직접 당군의 군량을 공급하기위해서 고구려로 군대를 이끌고 와서 당군에 군량을 공급하여 당군이 굶어죽는것을 면하게 해주고 구원까지 해주죠..민족의 반역자 새끼들 ㅠ_ㅠ..
만일 백제가 건재했다면 신라군이 고구려를 공격한다는것은 꿈도 못꾸죠..백제가 신라군을 견제할테니 말이죠..
거기다 당군이 장기전을 수행한다는것도 불가능해지죠..
고구려멸망의 가장큰 실책은 백제가 망하는걸 고구려가 막지못한게 가장 큰 실책이 될겁니다..
ID : 윤영철
2014-03-16
01:11:06
항상 대륙세력의 강한 도전을 받아온 고구려는 적의 수십만대군이나 100만이 넘는 대군도 막을 준비가 되있지만..
백제는 동성왕때 대륙백제가 북위의 수십만대군과 여러번 싸워서 물리친 이유로 별다른 큰 전쟁이 없었네요..
거기다 고구려가 있는데 설마 바다건너 당나라가 백제를 먼저 칠거라곤 전혀 상상도 못했겠죠..
그리고 당군과 밀약을 맺은 신라는 신라 서라벌과 국경지역성과 요충지성를 포함한 전역에서 병력을 집결시킵니다..그래서 겨우 만든게 5만이죠..이걸 만들기 위해 신라 대부분의 성에서 병력이 거의 사라지고 텅텅빈 성이 되죠..말그대로 온 국력을 집결시킨 결과죠..당나라가 없었다면 시도할엄두도 낼수없는 방법이죠..
바다건너 당군 13만이 도착하기로 맹약을 맺었으니 거기다 고구려에 대한 대비로 고구려 국경밖에서 당군이 군대를 집결시키고 고구려를 치는것처럼 위장하여 고구려가 쉽사리 병력을 빼서 백제를 돕는걸 막죠..
ID : 윤영철
2014-03-16
01:17:07
모든 준비가 끝난 나당연합군은 바닷길과 육로 두갈래 길로 18만대군으로 백제를 기습했고..
백제는 두갈래로 온 대군에 놀랐고 이에 대적할 전략전술이 바로 웅진성으로 전쟁지휘부를 이동하고 사비성엔 왕자한명과 일부군대를 두고 사비를 지키게 하면서 사비성에 백제의 대왕이 있는걸로 위장하고 적들이 사비성으로 진군하는 동안 웅진성에서 전국의 군대를 모아서 적들을 사비성에 가두고 군량을 끊고 대군으로 포위섬멸하여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다는 전략인데..참 어이없는 배신으로 백제가 망해버렸고..아쉽네요..
ID : 최영철
2014-03-16
04:01:25
20만 대군이 수도를 포위했다는 것은 싸움이 이미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고구려의 참전을 유도했다 해도 고구려 또한 많은 인원을 출병하진 못했겠죠.

그리고 왜에 참전을 요청한다 해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한마디로 싸움은 이미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방에서 원병을 조직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출병한다면 경계지역이 무너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방 호족들 자신들의 근거지가 사라짐을 의미하죠.

고구려가 적은 인원밖에 못보내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게 요서에 당이 20만명정도 배치해서 위협하면 고구려왕이 쉽게 구원병을 보낼수 없겠죠.
ID : 윤영철
2014-03-16
22:00:31
대군에게 수도가 포위됐다고 전쟁에서 졌다고 누가 그러던가요..고수전쟁,고당전쟁보면 평양성이 얼마나 여러번 적의 대군에게 포위됐나요..하지만 늘 고구려가 이겼죠..마지막 전쟁에서 연개소문아들넘들의 집안싸움만 아니었다면 일어나지도 않을 전쟁이 마지막 고당전쟁이구요..왜냐구요..구당서,신당서,자치통감에 보면 당은 662년사수전투패배후 원정군 대다수를 잃어버리고 패전후 사실상 고구려와의 전쟁은 더이상 없다고 선언해버립니다..그동안은 전쟁에 지더라도 끊임없이 군대를 다시기르고 군수물자를 축척하고 전함을 건조했지만 이모든게 중단됩니다..당나라 황제의 명으로..
그동안도 줄기차게 신하들 대다수가 이기지 못할적이라고 고구려 원정을 반대했지만 662년 고당 2차전면전에서 당나라는 고구려에 완패하고 드디어 당나라 황제와 황후(측천무후)대신,장군들 전원이 고구려원정 중단에 동의하고 완전히 손을 놔버립니다..그리고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평화를 갈구하죠..
한데 고구려에 연개소문이 죽고 연개소문아들들의 집안싸움으로 고구려가 사분오열되고 고구려의 힘이 조각조각 갈라지죠..근데도 당나라는 세작들에게 소식을 들었겠지만 전혀 군대를 동원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연개소문의 장남 남생이 당나라에 구원군을 요청하는 사신을 여러번 보내게 되고 그제서야 군대를 동원한 고구려 원정군이 준비됩니다..말그대로 고구려가 멸망한 마지막 전쟁은 당나라가 의도한 전쟁이 아닙니다..
ID : 윤영철
2014-03-16
22:09:20
그리고 제가 이미 말했죠..고구려와의 국경지역에 당군이 대규모로 배치되서 고구려가 백제를 대규모로 지원하는걸 견제하는 양동작전을 폈다고..백제멸망시..
나당연합군 18만은 사실상 사비성으로 직공을 해왔고 중간에 거치는 성과 요충지는 전혀 함락시키지 않고 막지만 않으면 그냥 놔두고 사비성으로 직공합니다..이말은 적은 완전히 포위됐다는 말입니다..군량을 보급받을길도..당군은 수도를 함락시키고 거기에 있는 왕을 사로잡아 전쟁을 단기간에 끝내고 싶어했고 그래서 위험을 감수한 작전을 펼친거죠..
저들도 뻔히 포위될걸 알면서..거기다 바다건너 당군이 다시 대군을 끌고 바다를 거널수있는 상황도 아니었구요..
신라는 이미 신라전역에서 모은 5만군사로 더이상의 병력은 없었구요..이런 상황에서 백제의 전지역인 5방에서 구원군을 못보낸다구요..산적님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요..자기 지방 지키자고 원병을 못보낸다니요..어이가 없군요..조선같이 문치주의 빠진 나라조차도 임진왜란같은 상황에서도 왕명이 떨어지면 제 지역 버려두고 전병력을 모아서 달려가는데 하물며 왕족이나 귀족조차도 무를 숭상하고 전쟁이 터지면 가장 먼저 앞서서 싸우던게 왕과 왕자,왕족,귀족들인 시대가 고대국가입니다..상무정신으로 무장한 시대에 무슨 말도 안되는 말입니까..
ID : 윤영철
2014-03-16
22:12:02
적이 쳐들어왔는데 자기가 지키는 지방이 무너질까봐 구원을 못해요^^..어디가서 그런소리 하지 마세요..
다 비웃을 겁니다..나라가 무너지면 지방귀족들 그들이라고 무사하지 못하는데 무슨 헛소리인가요^^..
모든걸 승자가 가지는게 전쟁인데..
ID : 고구려(고대경)
2014-03-17
20:55:25
도성인 사비성이 함락이 되었다고 해도 백제의 군주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게 항복을 하지 않았고 백제인들의 구심점이 되어서 웅진성을 근거지로 나당연합군을 상대로 저항을 하고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고 지구전과 유격전을 병행하면서 겨울이 올 때까지 나당연합군의 보급로를 차단했다면 나당연합군 중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는 사람이 생겼고 말까지 잡아 먹는 상황이고 살기 위해서 탈영하는 병사까지 생기는 상황을 가정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DEL

각 지방의 성주와 백제군이 신라에서 오는 군량과 군수품에 대한 보급을 차단하고 당군의 경우에는 바다 건너 당에서 보급을 받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백제 수군이 고구려 수군과 연합해서 당 수군이 보급을 해주는 것을 막을 수가 있다면 백제는 나당연합군의 전력을 약화시키면서 당과 신라의 침략을 막아낼 수가 있었고 항복을 해야했던 것은 신라왕이 되어서 딸 고타소와 사위 김품석의 원수를 갚을려고 했던 김춘추 쪽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역사에는 만약 이란 없지만요. 물론, 백제 수군이 고구려 수군과 연합해서 당 수군이 상륙한 당군의 보급을 차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지만요.
ID : 최영철
2014-03-19
19:14:39
꿈꾸는 소년님...
부여를 중심으로 한 충청권의 여행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평양성이 도성으로 포위된 것은 단 한번 있었고, 그 한번으로 고구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아울러 부여를 도성으로 삼고 있는 백제의 경우 지원을 올수 있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진이 갖춰신 20만대군을 상대하기 위해선 그보다 훨씬 많은 병력이 필요한데, 백제의 경우 많아야 10만명을 넘지 못합니다.
백제는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국토를 가지고 있고, 금강 위로는 신라 황산벌(논산)을 지나면 신라라는 한마디로 사방중에 이방이 적으로 둘러 쌓여 있는 형국이죠.
결국 올수 있는 곳은 남쪽인데 익산 김제 전주등 평야지역이고 이럴 경우 적은 인원으로 대군을 상대해서 싸운다는 것은 한마디로 자살행위입니다.
고구려님께서 말씀하시는 웅진성에 틀어 박혀있으면 되리라 생각하시는데 분명 말씀 드렸다시피 금강 윗쪽은 신라이고 금강을 통해서 보급한다면 부여까지 배를 이용한 보급이 아주 원활했다는 거죠.
남쪽만 차단하면 웅진성이든 사비성이든 독안에 든 쥐의 형국입니다.
결국 패망은 당군이 상륙하면서 끝났다 보시는 것이 현명합니다.
서천에서 부여까지 적군을 막을수 있는 곳은 한곳밖에 없습니다.
매한가지로 계백장군이 전사한 동부전선 또한 막을수 있는 곳은 황산벌이 유일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황산벌처럼 벌판이 있는 곳이 아니라 대전에서 논산으로 가는 길은 꽤 높은 산들이 많습니다.
이런 곳이기에 적은 병력으로 대군을 맞이해서 싸울수 있었던 거지 무슨 용가리 통뼈도 아니고 5천과 5만이 벌판에서 싸운다면 결과는 뻔합니다.
ID : 윤영철
2014-03-20
18:14:58
평양성이 포위된게 한번뿐이라구요..역사는 아시나요..수양제의 113만대군이 고구려를 침공했을때 요동에서 발이 묶이자 별동대30만을 조직하여 평양성으로 직공합니다..
이때 이들이 평양성을 공격했고 이들을 물리친게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입니다..수양제의 아버지 수문제때도 수나라는 30만이 넘는대군으로 수륙으로 고구려를 침공합니다.이때 수나라 수군이 직접 평양성을 공격했고 고구려군은 이들을 평양성에서 전멸시킵니다..평양성안으로 수나라군을 끌어들여서 전멸시키죠..고당전쟁에서 백제멸망한 660년부터 662년까지 고당 2차전면전이 발발합니다..이때도 수나라 수십만대군이 평양성을 포위합니다..아주 어렵고도 긴 싸움을 계속하게 되고 결국은 연개소문이 사수대첩으로 이들을 전멸시키고 고구려가 승립합니다..역사를 알고 쓰세요..이래뵈도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금강위가 신라땅이라구요..한강유역의 경기권일부가 신라땅이었죠..뭘알고 적으십시요..금강위가 신라땅이면 사비성은 진작에 신라군에게 수로로 고립됐을 겁니다..나당연합군이 쳐들어오기전에요..금강의 물줄기가 사비성과 이어지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의자왕때 신라의 당항성을 포함한 73개성을 빼았습니다..더 빼앗았지만 일부를 신라군이 탈환하죠..의자왕 재위 20년간 10번이나 신라를 공격합니다..2년에 한벌꼴로 신라를 공격하여 이룩한 성과죠..당항성의 위치가 어디있줄 아나요..경기도 화성입니다..여기도 백제가 빼앗았죠..아주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입니다..당과 신라가 바닷길로 통교하는 곳이고요..의자왕때 여기도 탈환하지만 당나라의 압박에 당항성은 신라에 돌려줍니다..백제가 멸망할때 백제의 영토는 금강전역이 백제의 영토고 경기도 당항성 바로 밑에 천안까지 백제 영토였습니다.. 뭘 알고 적으세요..
그리고 황산벌전투의 백제군은 철저하게 시간끌기위한 사석으로 나선 군대입니다..적의 진격속도를 늦춰서 반격할 시간을 벌기위한..당시 당나라나 신라군은 백제의 성과 요충지를 철저히 무시하고 사비성으로 진격합니다..이게 팩트입니다..
ID : 최영철
2014-03-22
20:49:33
꿈꾸는 소년님//좋은 말씀 많이 하셨네요.
먼저 백제에 대한 것부터 댓글을 달려 합니다.
당항성이 경기 화성시에 있고, 백제 의자왕이 수복했다 당의 압력에 의해서 신라에 돌려줬다라 하셨는데 그럼 백제 패망때 적어도 화성까진 신라의 영향력이라는 사실은 님의 글로 충분하겠죠.
그럼 화성 이남에 백제가 실질적으로 전략적으로 막을수 있는 선은 천안 남쪽의 금북정맥(백두대간 이론상)밖엔 없습니다.
그리고 신라군과 마주하고 있는 곳의 군사를 빼는 것은 사실상 어렵고 지원이 없을 것이란 것을 알면 사실상 무주지에 가깝죠.
고대국가의 국경선이란 개념이 거의 없었죠. 다만 완충지역이란 것이 존재해서 어느 세력의 영역에도 속하지 않는 지역들이 존재했을뿐이고....
그런 의미에서 백제의 북쪽 국경선은 금강이 마지노선입니다.
그리고 계백장군의 황산벌이 시간끌기에 불과하다고 하셨는데 맞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씀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시간을 끌면 원병이 오리라 생각했겠지만 올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백제의 성과 요충지라라 볼수 있는 곳도 서천에서 부여까지 올때 단 1곳만이 존재하고 대전에서 논산까지 사이에도 단 1곳밖엔 없습니다.
서천에서 부여까지 단 한곳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대군을 맞이해서 싸우기엔 역부족인 곳입니다.
결국은 황산벌을 제외하고는 백제의 요충지는 없다 보면 맞습니다.
수양제때 평양성이 포위가 되었다는 말씀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계획된 전략에 포위되었다 여기신다면 우리군 1명이 북경에 있으면 북경이 포위된 거라 우겨도 할말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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