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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최영과 삼봉 정도전의 요동정벌을 비교하면 2014-03-11 2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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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3967     추천:96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최영과 삼봉 정도전의 요동정벌을 비교하면 실제로 요동정벌이 이루어졌다면 성공을 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었다고 할 수가 있을까요? 고려 말 우왕 시기에 명나라가 철령이북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관리를 파견하겠다고 했을 때에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영의 주도하에 요동정벌이 진행이 되었지만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요동정벌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조선 초에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업한 후에 명과의 외교관계가 나빠지면서 삼봉 정도전의 주도하에 진법훈련을 하면서 요동정벌을 준비했지만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정안대군 이방원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으로 삼봉 정도전은 제거가 되면 요동정벌은 무산이 됩니다.

 

 최영과 정도전이 추진한 요동정벌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정세를 보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가 있나요? 최영이 요동정벌을 주도할 때에 이성계는 4대 불가론을 주장하면서 요동정벌을 반대했고 출병을 할려면 가을에 해야한다고 주장을 했고, 위화도 회군으로 요동정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도전에 의해서 요동정벌을 준비가 되었을 때에 이방원의 1차 왕자의 난으로 인해서 무산이 되었습니다.

 

 역사에는 만약 이란 없지만, 최영이나 정도전이 추진한 요동정벌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고려나 조선의 국력과 군사력으로 요동을 정벌하고 요동을 지켜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할 수가 있나요? 고려 말의 정세와 조선 초의 정세를 보면 어느 쪽이 요동정벌을 하기에 국내외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할 수가 있나요?

 

 몽고족의 원이 밀려나고 한족의 명이 강성한 동북아 정세를 보면 최영과 정도전은 요동정벌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특히, 최영의 경우에는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을 출병시기로 선택을 해야 했는지 가을에 출병하는 경우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정도전의 경우에는 진법훈련을 시키면서 요동정벌을 계획했다면 승산이 있는 전쟁 이라고 명의 군사력은 조선의 군사력으로 견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본인의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요동정벌을 추진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할 수가 있는지 궁금 합니다.

 

ID : 최영철
2014-03-11
23:34:46
최영장군때는 가능했을 겁니다.
당시 원나라가 아무리 쇄약해졌어도 약간이나마 힘이 있었고, 우리 또한 힘이 있으니 파죽지세의 명군이라도 고전을 했겠죠.
조선초 정도전의 계획은 무모했습니다.
원은 이미 끝난 상태고 명은 안정을 찾아가는 때죠.
이때의 명군은 한마디로 산전수전 다 격은 강군이면서 쉴만큼 충분히 쉰 사기만땅의 군인 것에 반해서 조선은 쿠데타로 집권한 이성계의 정권초기임과 고려복위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만약 출병을 했다면 명군에 박살나기 전에 내부 쿠데타로 도중에 회군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았을 겁니다.
ID : 고구려(고대경)
2014-03-12
02:37:38
이성계와 조민수가 이끄는 5만의 고려 요동정벌군이 요동을 점령을 해도 그 후에 요동지역을 지킬려면 명과 북원 사이에 힘의 역학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둔한 군에 대한 지속적인 병력 보충과 소모 되는 군량과 군수품에 대한 보급이 이루어지고 남쪽의 백성들을 요동지역에 정착시키고 여진족을 회유, 포섭을 하면서 협력을 얻어내고 명의 공격에 대비를 해야하고 남쪽에서 왜구의 침입과 노략질에 대한 대비와 대응을 해야 하지 않나요?

왜구의 경우에는 최영과 이성계, 최무선의 활약과 화약무기의 등장으로 소탕을 했다고 하지만 고려군의 주력이 북방의 요동으로 집중이 된 틈을 다시 다시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요동정벌의 시기를 보면 조선 초 보다는 고려 말 우왕시기에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봅니다. 몽고족의 북원과 한족의 명이 대립하고 있던 시기이고 요동에 흩어져 살던 고려인과 여진족들의 협력을 얻어 낸다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보여 집니다. 고려의 군사력이 명의 군사력에 비해서 어느 정도 수준 이었는지가 중요하지만요.


문제는 고려가 요동정벌을 하는 것이 가능해도 지켜내고 요동을 통치할 수고 국력신장을 위해서 얼마나 요동을 활용할 수가 있냐 라고 보여 집니다.
ID : 이경학
2014-03-12
13:36:31
정도전은 무모했죠 명이 안정기로 접어들었으니, 그러나 최영장군땐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건 위화도이전에 요동정벌을 시도한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사령관 이성계는 공민왕시절 군사 2만으로 딱 3군데 점령하고 사실상 남만주일대 요충지를 장악했습니다.(요동성, 국내성, 한군덴 기억이 안남) 그러나 일시적인 점령은 가능했어도 점령지를 완전히 고려화할 순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북로남왜로 인하여 고려의 국력이 받쳐주질 않았고 병력도 모자랐으며 군수물자도 모자랐다라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ID : 고구려(고대경)
2014-03-13
20:23:01
고려말, 조선초의 요동정벌 이라면 요동정벌이 이루어진 후에
명나라 영락제 이후까지 요동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백성들을 이주시키고
관리를 파견해서 통치를 하고 여진족들을 포섭, 회유해서 복속을 시킨다면
우리 영토가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명나라는 영락제 시기가 전성기
였고 그 후에는 전성기가 지났다고 보면요.
ID : 이슬레이
2014-03-19
09:47:41
고려가 건국될때 후삼국의 영토는 만주지역도 포함이 되었는데..
왜 한반도에만 머무르게 된건지.. 이해가 안가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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